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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느리게 읽기

담론 2부 15장 위악과 위선

by 책이랑 2016. 10. 12.

위악이 약자의 의상이라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
재소자들의 문신, 붉은 머리띠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검은 법의 엄숙성, 정숙함
눈썰매를 끄는 개에게 가하는  엄벌과 공포를 떠울리게 함
강자의 위선은 법이나 도덕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독일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프랑스 장교의 아내가 보낸 편지
독일인 장교가 바흐 연주실력이 뛰어나다는 내용

권력은 의상일 부분
교도소는 약자들이 쫒겨 들어온 산
재소자들의 험악함은 강자들이 약자에게 입힌 옷과 같다.
테러가 강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 (담론 p.270)

노인방과 야쿠자 방의 비교
-야쿠자방은 폭력투쟁, 노인방은이론투쟁
폭력투쟁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승패가 남, 힘센놈이 이김

약자의 위악은 잘 보이지만 강자의 위선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담론 p. 273)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담론 p.274)
미셸푸코


...
그러나 윌리스는 결론 부분에서  이야기합니다. 귓구멍들을 경멸하고 공부와 정신노동보다는 육체노동의가치를평가 절상하는 그덜의 계급의식이 그 사회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다시 그 체제의 효과적인 작동에 봉사하게 되는 역설에 마음 아파합니다. 위선과 위악에 대한 통찰이 비록 뛰어난 것이고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통찰을 차폐하는 사회적 장치는 치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통찰 그 자체로서는 사회적 역량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찰에서 시작되어야 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도서의 반ㅁㄴㅜ화와 민중적 감성은 내게 매우 중요한 성찰의 원천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범생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감옥은  '대학'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가 모두 위선적이지도 않고 약자가 모두 위악적이지도 않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강자 중에는 파시스트를 자처하는 위악적 인물도 많고, 반면에 위ㅅㄴㅓ을 무기로 삼는 약자도 없지 않습니다. 영화 <디어 헌터>에 사슴 사냥 장면이 있습니다. 퇴로가 차단된 사슴이 초구 앞에서 눈물 그렁그렁한 큰 눈으로 헌터를 응시합니다. 디어 피버입니다. 그 뜨거운 시선에 사냥꾼은 총을 내려놓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선과 악이 확연하게 구분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우슈피츠에 대한 최고의 증언자로 평가받는 프리모 레비는 가라앚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이야기합니다. 아우슈비츠를 운영하고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합니ㄷ.ㅏ 그것이 일부 괴물들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었다면 얼마나 다행한 것일까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요점은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내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들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오디오와 비디오의 현란한 조명, 그리고 수많은 언설이 만들어 내는 환상 속에서 우리가 그 실체를 작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이러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인간 이해의 천박함에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ㅈㅇㅡ을 고르게 키워 가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노력이 부족함을 탓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곤히 잠들어 있는 가슴에서 눈 부릅뜨고 있는 문신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그림입니다.


임꺽정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자'의 면모로 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이미지를 입히는

주류 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대응 방식에

관해서도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결코 약하게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는

문신을 하거나 성깔 있는 눈빛을 만든다. 위악(爲惡)을 연출한다.

생각하면, 사회적 약자는 위악을 무기로 하고, 반면에 사회적 강자는

위선(爲善)을 무기로 한다. 극적 대조를 보인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법정(法庭)의 정숙이 그것이기도 하다.

 

-신영복 교수의 <변방을 찾아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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