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동아리/연북학부모독서동아리

숨결이 바람 될 때

by 책이랑 2017. 4. 26.

3주차 공격적 연명치료

4주차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

5주차 어떻게 죽을것인가


나는 노화의 의학적, 생물학적 현상을 살피지 않고서 철학적으로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해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가완디는 우리가 새로운 “죽음의 기술”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그 점에서 현대 의학은 실패했다고. 의학은 한 시간에 7천 달러짜리 수술, 한 달에 1만2천 달러짜리 화학요법으로 죽음을 미루는 데 능하고, 아무리 위중한 사람에게도 늘 더 제안해볼 처치법을 안다. 그러나 의학은 언제 치료를 멈춰야 하는지 모른다. 의사들은 “여기 몇 가지 선택지가 있으니 고르세요”라고 할 뿐, 환자와 노인에게 죽음을 대비시키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의사에게도 고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도 피한다.

통제력, 불투명한 치료법에 현재를 양보하는 대신 최대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존엄이


가치있는 삶

연명치료

자율성


Q: 당신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한 생각들을 시도해 본 적도 있나요?


A: 네, 우리는 병원에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료진들이 죽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게 다음 질문들을 하도록 훈련합니다. 이 질문들은 매우 중요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질문이지요.
지금 당신의 몸이 어떤 상태라고 생각하나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운가요?
 약간의 시간을 더 얻기 위해 무엇을 참을 수 있고 무엇을 참을 수 없나요?
우리는 환자들이 이런 질문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충분히 일찍 가질 때, 사람들은 세 번째 화학요법이 실패했을 때 다시 이를 네 번째로 시도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치료를 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병원에서의 시간을 줄이고 가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은 덜 불안해 하며 그 결과, 놀랍게도 더 오래 살게 됩니다.

If your time becomes short, what is most important to you?
 What, in other words, is your definition of a happy, purposeful
 life? 

deserves to lead a meaningful life, 

people have priorities besides just living longer. 

there are things that you have responsibility for.

 the depth of the relationships we form in our journey.

And it helped them live longer! It’s like, no, that’s not the point. The point is that it let them live better.

 how one life well-lived can continue to create such a great impact.

“He (Paul) wasn’t writing about anything—he was writing about time and what it meant to him now, in the context of his illness.”  It’s a beautifully written, insightful, page-turning book on how we connect as humans and why life – no matter how truncated – is worth living. I will be recommending this strongly to just about everyone in my life.

Accounts of how Dr. Kalanithi wrested with walking the line between objective medicine and compassionate humanity 

 they go about keeping people connected to the things that they most care about in life.

to live, work and love normally.

 "I can't go on. I will go on".


Atul Gawande provides the reader with an understanding that though end of life care is
inevitable there are ways to humanize the process.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다
현대 의학의 공격적 치료는 더욱 큰 문제를 가져다준다.

인공호흡기, 영양공급관,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의학적 경험으로 만드는 실험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할 의료계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인병학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할 필요
둘째, 환자들과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이런저런 정보를 나열하기보다 '해석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이를 해석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306~309쪽)

해석적 태도가 중요한 까닭은 마지막에 이른 환자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치료에 매달리는 건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고통을 줄이고, 삶의 품위를 유지하고, 다 끝내지 못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면 바로 그 일상의 가치들을 실현하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 남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위험이 있다면, 어떤 환자도 맹목적인 생명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 

의료계의 의식 변화 외에 우리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방식으로의 사고 전환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죽음과 마지막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어려운 대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은 적지 않다. 저자는 악성 종양에 걸린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본문 322~324쪽) 완화치료 전문가 수전 블록의 아버지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 있는 정도'라면 견딜 만할 것 같다고 말한다.(본문 280~281쪽) 결과적으로 이 대화는 중대한 수술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환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 준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미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국 위스콘신주 라 크로스 지역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1991년부터 의료진과 환자들로 하여금 삶의 마지막 시기에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이 지역 주민들이 생의 마지막 6주 동안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종말기 의료비용은 전국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기대 수명은 전국 평균에 비해 1년이나 길었다.(본문 273~275쪽)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끝까지 질병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며 치료에 매달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 있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이다. 죽음이 결국 삶의 이야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

저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이 차지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의학과 죽음이 새롭게 대화할 가능성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시선, 가족의 테두리에서 보내지 못하고,
최후까지 최선의 의료 속에서 의학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 즉 생명을 지키려는 의료진 vs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온전하게 맞이할 수 있는 여지
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 vs
하지만 정작 길어진 노년의 삶과 노환 및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

1 독립적인 삶 _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3 의존 _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4 도움 _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5 더 나은 삶 _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6 내려놓기 _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

7 어려운 대화 _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 용기 _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의미, 정체성, 죽음

의학이, 과학이 인간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좋은 의사란 어떤 것인지

출처: http://booksreview.tistory.com/573 [책이랑]

나는 무덤가에서 놀며 위로받으며 자랐다 
우리는 애도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중환자실 
고립_ 
소외_ 나에 관한 일을 나에게만 알려주지 않는다면
침묵_ 왜 할머니에게 직접 묻지 않을까
분노_생의 마지막을 폭력으로 보내게 한 책임은
공포_ 이들이 가진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다
배제_ 나의 죽음을 왜 다른 이가 결정하는가

3장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 이별하기 어렵다는 것 
할머니가 원하던 '잘 이별하는 방법'은

4장 죽음 이후, 당신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어느 뇌사자의 여행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째서 가난한 이의 마지막은 더 고단한가 
우리는 왜 그 형을 비난했나

5장 다른 가능성들
병원 안에서도 평화롭게 이별할 수 있다
DNR 동의서의 부적 효과 


인생- 목적과 의지
정체성- 새로운 정체성
고통 과 
극복(의 의지)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 - 10점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흐름출판



 95
신경외과의는 정체성이라는 혹독한 용광로 속에서 일한다. 모든 뇌수술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인 뇌를 조작하며, 뇌수술을 받는 환자와 대화할 때에는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뇌수술은 대개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그래서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이 그렇듯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치명적인 뇌출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112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인한 독특한 고통은 때로는 환자보다 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준다. 그래서 그 의미를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건 의사뿐만이 아니다. 뇌를 다쳐 머리를 깎고 누워 있는 사랑하는 이의 주변에 모인 가족들 역시 그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를 본다. 그동안 쌓아온 추억, 새삼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 이 모든 것을 그들 앞에 놓인 몸이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들이닥칠 미래를 본다. 외과 수술로 목에 뚫은 구멍을 통해 연결된 호흡보조기, 복부에 낸 구멍으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 장기간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과 불완전한 회복. 때로는 환자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체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142~143쪽) - simple

 173
어느 날 밤, 옆에 누워 있던 루시가 물었다. “여보, 가장 무섭거나 슬픈 일이 뭐야?” “당신하고 헤어지는 거.” 나는 아기가 생기면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내가 죽은 뒤 루시에게 남편도 아기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최종적인 결정은 루시가 내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녀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할 텐데, 내 병이 악화되면 나까지 돌보느라 더 힘들 것이었다. “아기가 생기면 우리가 제대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루시가 물었다. “아기와 헤어져야 한다면 죽음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렇다 해도 아기는 멋진 선물 아니겠어?” 내가 말했다.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179~180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193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중략)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198쪽)simple

  
 229~230
“아버님, 따님을 한번 안아보시겠어요?”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글쎄요, 내 몸이 너무 차가워서.”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안아보고 싶어요.”그들은 내 딸을 이불로 감싸서 내게 건네주었다. 한쪽 팔로 아이의 무게를 느끼고 다른 팔로 루시의 손을 잡고 있으니 삶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내 몸의 암세포는 여전히 죽어가거나 아니면 다시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써내려가야 할 빈 페이지였다.
폴은 자신의 강인함과 가족 및 공동체의 응원에 힘입어 암의 여러 단계에 우아한 자세로 맞섰다. 그는 암을 극복하거나 물리치겠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허황된 믿음에 휘둘리지 않고, 성실하게 대처했다. (중략) 불치병에 걸렸어도 폴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257쪽) - simple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261쪽) -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살고, 숨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제프와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고보처럼 죽음과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란 건 없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189

에마는 내게 말을 하고 있다기보다, 이런 일을 진정으로 통제하는 힘을 가진 존재에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와 나는 근엄한 분위기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평범한 두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심연에 직면하여 한없이 위축된 한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또 한 사람

나는 폴이 세상을 떠나면 내 인생에는 오로지 공허와 슬픔만 남을 줄 알았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쉐기쉐기몽쉐기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나가는 것이다.”- 쉐기쉐기몽쉐기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165쪽)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201쪽)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결혼 생활을 지키는 비결은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는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254쪽, 에필로그: 루시 칼라니티) 

너무 무신경한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슬픔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냈고, 그 표정은 그 어떤 강의보다도 내게 의학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다른 교수가 그렇게 자르라고 했다는 내 해명에 감독 교수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고, 갑자기 교수들은 얼굴이 벌게진 채 복도로 끌려나갔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105, 106쪽- 붉은눈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 140, 141쪽- 붉은눈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 161쪽- 붉은눈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164쪽- 붉은눈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 169쪽- 붉은눈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179, 180쪽- 붉은눈



22. 없는 병도 만든다. 외르크 블레흐. 생각의나무 소위 ‘의료화(medicalization)’ 현상을 다룬 책이다. 의료화란 과거에는 의료의 영역이 아니 었던 부분이 의료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현상으로, 다르게 표현하면 과거에는 환자가 아니었 던 사람이 환자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광범위 하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문제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 엇인지 등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105, 106쪽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 140, 141쪽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164쪽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 169쪽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179, 180쪽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 201쪽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방법론은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손쉽게 조작하기 위해, 현상을 다루기 쉬운 단위들로 축속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만든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핵심적인 감정과 과학 이론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어떤 사상 체계도 인간 경험을 온전하게 담을 수 없다. 형이상학은 계시(啓示)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 201, 202쪽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과거의 것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돈, 지위, <전도서>의 설교자가 설명한 그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 233쪽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