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토 13기〈흐르는 편지〉
(18.10.27) (김숨/현대문학)
흐르는 편지 - 김숨 지음/현대문학 |
작가 김숨은 2016년 장편소설 <한 명>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역사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며 쓰게 된 소설 <한 명>에 이어 작가는 또 한 권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의 생애를 다룬 장편소설 <흐르는 편지>를 내놓는다.
만주의 낙원위안소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의 일본군‘위안부’ 소녀 ‘나’는 열세 살 때 중국으로 끌려와 위안소에서 아기까지 갖게 된다. 그곳 낙원위안소에는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 군인에게 납치를 당해, 직업소개소로부터 사기를 당해, 부모나 양부모가 팔아넘겨서 위안소까지 오게 된 10여 명의 조선인 ‘위안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하는 위안소에서 꽁보리밥에 단무지, 건더기라고는 없는 묽은 된장국으로 연명하며 날마다 몇십 명씩의 일본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시달리는 조선인 ‘위안부’들. 그중에는 죽은 아기를 낳은 위안부, 아기를 낳자마자 빼앗긴 위안부, 남에게 갓 태어난 아기를 건네준 위안부, 아기를 낳지 못하고 임신한 채로 죽은 위안부들도 있다. 생명이라고는 존재할 수 없는 위안소에서 생명을 품게 된 소녀 ‘나’는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인 어머니를 향해 날마다 흐르는 강물 위에 편지를 쓴다.
■ 자유 논제
1. 위안부들이 살아온 삶을 서사시 형식의 독백으로 재구성한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별점과 소감
- 3.0/ 5.0/ 4/ 4.7 /5 /3
▶ 읽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직업적인 수련과정에서 필요해서 아우슈비츠 성폭력 피해자 사례책을 읽어야만 했을때도 너무 힘들었었다. 그 책을 읽게 한 선생님에게 화가 났었다. 이 책 역시 읽기에는 힘들지만 읽어야만 할 책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 또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제정신으로 쓰기 어려웠을 텐데. ('작지만 단단하다'는 평을 듣는다는데) 작가가 감정을 끝을 보여준다.
▶ 새토를 비롯한 토론그룹에서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을 떠올리며 읽었다. 여성의 시각에서 전쟁을 그렸다는 점에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의 인간의 행동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것이 인간인가>,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가중시키는 고통을 다룬 <아픔이 길이 된다면> 등이 떠올랐다.
또 11월에 출간될 기획회의 476호 특집의 주제는 기록의 중요성이라고 한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한 온유작가와 김숨작가가 소개된다고 한다.
김숨 작가는 “ 위안부 할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위안부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분들의 삶이 지금 우리 삶과 연결돼 있고, 우리 딸들의 미래와도 닿아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다룬 증언 기록들이 많지만, 김숨 작가는 문학으로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록자로서 김숨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 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본다.
[출처] “유대인의 참상은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있는데 우리는 기록조차 되지 않은 참상이 무수히 많다. (…) (참상들이) 역사로 남으려면 기록으로 보존되어야 한다.”|작성자 한기호
▶ 2016년에 나온 <한 명>을 썼던 그 작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생각났다.
▶ 나역시 새토가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 작품이 일인칭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는 데다가, 아우슈비츠 - 떨어진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의
(내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괴로웠다.
- 일인칭 시점이기에 "~ 을 당한 사람"이라는 단편적 인식을 넘어서게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도 이러저러한 일이 생기는, 다차원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때도 존엄성이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었다.
▶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전에 읽었던 일본 포토저널리스트가 남북한 위안부를 인터뷰해서 낸 책- <기억하겠습니다>가 떠올랐다.
- 두 작품을 비교해 본다면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잘 되어 있지만 정작 '이야기'가 없어진 느낌이다.
기억하겠습니다 -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이은 옮김/알마 |
저자 이토 다카시는 포토저널리스트다. 1981년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오가면서 원자폭탄 피해 실태를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약 7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피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본은 물론 한반도에 사는 피폭자들을 취재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취재한 피해자는 8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말한다.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해야 하는 일은, 일본에 의해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고.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규모에 대해서는 8만 명에서 20만 명 등의 수치가 있지만 모두 추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규모와 관계없이 상당히 많은 여성이 '국가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오점을 남긴 큰 사건이다. 이만큼 대규모로 여성을 군대 전용의 성노예로 만든 국가는 일본뿐이다. 저자는 일본의 과거를 일본인이 직접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분노와 슬픔을 정면에서 마주하겠다고 결심했다.
▶ 작품인에 일본군인의 심리가 드러난 것이 놀라웠다.
또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주인공 할머니가 위안부라는 것을 알고
주변사람들이 할머니를 피하는 것이 나오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을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 병자호란때도 몽골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화냥년이라고 부르면서
죄를 지은 사람 취급했었 던 것과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걸쳐 읽어나갔다. 등장인물의 체험이 나의 체험처럼 느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여러 등장 인물이 섞이면서 나, 우리의 고통이 내 몸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마지막에 첨부되어 있는 평론이 방해가 되었다.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순하게, 그리고 단정적으로 말함으로써 읽으면서 무겁게 느낀 감동을 흐트러뜨리고 또 너무 빨리 사라지게 만들었다.
▶ 읽기가 힘들었다. 역사상 국치를 당할 때를 다룬 영화와 소설이 그렇듯이. 그런 작품들에는 일반 백성들이 감당하는 수모와 고통이 드러나 있다. 작품을 읽으며 지옥이 최극점이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 구더기, 이, 벼룩이 나오는데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것이겠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 이 아픔이 집단의 공동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기에 5.0이다.
- 질병과 고통에의 감정이입, 그리고 돌봄과 성찰에 관한 책인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있어 더 그랬다.
-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일인칭 소설이기에 절절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사실 타인의 고통에 너무 무감각하다. 이 고통이 잊혀지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책이다.
그러나 읽은 바를 내 안에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반비 |
▶ 4 점
문학적인 별점을 내기에는 무거운 주제이다.
힘든 책을 읽으면 몸으로 느껴지는 정도여서 이런 책은 멀리한다. 새벽독토를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후 읽기는 고통스럽지만 꼭 읽어야 겠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 남자고등학생들과 영화 <귀향>을 보고 이 책도 읽었는데 반응이 달랐다.
귀향은 그들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루어졌다면
이 책은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철저히 고증하여, 스토리로 전달하는 작가이다.
- 우리 세대가 김숨 김엄지와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 세대와 세대가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는 다른 느낌이다.
- 미투운동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겠다.
2. 인상적인 부분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 292 타인의 고통에 관한 부분.
너무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지인중에 실제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하다.
" 인간은 본디 제 경험의 테두리 안에서만 맴맴 돌기 마련이라, 듣는 이는 아무리 비참한 타인의 고통이라도 자기 체험의 총체에 견주어서만 이해하려 할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에서 연상된 자기 체험을 그에게 투사하며 그를 이해한다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자기복제나 자의적인 상상에서 그리 멀지 않다. 요컨대 단말마의 고통은 표현되거나 전달될 수 없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마저 그 정체를 모른다. 한 위안부 할머니의 "어떤 말로도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발언이 고통에 관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고통을 진실로 이해하려면 지구를 들어올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간절하게 청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자들은 모종의 악몽을 공통적으로 꾸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은 믿어주지도 들어주지도 않으며, 심지어 몸을 돌리고 침묵속으로 가버린다. 이 꿈은 극단적 고통을 겪는 사람의 간절한 소망과 불가피한 절망을 동시에 암시한다.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를 진실로 소망하지만, 동시에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절망한다.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 것이기에 이해받기를 쉽사리 낙관할 수 없는 것이다. 평균치 이상의 고통 속에 놓인 사람의 몰이해의 예견 때문에 이중으로 괴롭고, 그들의 예견은 어느 정 사실이기에, 절망은 더욱 참혹하다. 이 절망을 조금이라도 희석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이해와 공감의 여정이 지난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수난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여야 한다.
▶ 41p
우리는 이와 벼룩, 빈대뿐 아니라 바퀴벌레와도 함께 산다. 지네하고 쥐하고도.
끔찍하다는 생각 동시에 그것들과 자신을 동급으로 놓는다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
▶ 101p
입으로 삼킨 것은 토할 수있는데 눈으로 삼킨것은 토할 수 없다. 눈도 입처럼 토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몸에 다녀간 군인들의 얼굴을 토하고 싶다. 가장 처음 내 몸에 다녀간 군인의 얼굴을 가장 먼저. 처음 내몸에 다녀간 군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얼굴이 쓰고 있던 뿔테안경은 기억난다. 그 얼굴을 토하다 안경이 부러지고 깨지면 어쩌지? 깨진 뿔테 안경 조각이 내 눈동자를 찌르면? 나는 얼마나 많은 얼굴을 토해야 할까? 너무 많은 얼굴을 토해야 해서 눈가가 짓무르고 눈동자가 터져버릴지 모른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고통을 잘 표현 했다.
3. 아이를 임신한 후 출산을 망설였던 ‘나’의 마음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 생명의 가치를 수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는데 나는 15 살에 모성이 있을까? 하는 게 의문이다.
모성을 타고 나는 것이라 고 여기는 생각도 있는데 나는 모성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며 출산 후 아이를 보살피는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 지는 것이라 본다.
▶ 생명의 가치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갈등하는 것. 주인공은 두려움과 갈등이 계속되는 상태이다.
▶ 내가 살아야 하니 일본 군인이 살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 피해 당사자는 분노, 고통을 느끼며 내면이 소용돌이 치는 심리로 평생을 살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은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쳐도 나는 나 자신을 수용하며 70년 이상을 살아야 하지 않나.
▶ 평론을 읽고 내담자의 말을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그 심정은 못 느끼고 상담을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평론 두세 페이지를 읽고서는 감동을 헤칠 것 같아서 읽지 않았다.
▶ 김학순 할머니가 도무지 안되니까 도망다녔다. 70살까지 도망다녔다. 라는 말을 하셨다.
아픔, 고통에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가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동물적인 감각일 것이다.
평론에서 말한 것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 15 살이면 일제강점때도 부모 슬하에 있을 나이이다. 그 나이에 겪기에는 상상이 안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부분이 낙태논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생명권 vs.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대립은 옳지 않으며 국가 vs. 생명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아기의 생명 , 여자의 자기몸에 대한 권리를 운운하기 이전에
파시즘의 광기로 인해 전쟁이 수행되고 전쟁을 수행하면서 가난하고 어리고 약자인 여자들의 몸이 희생당하는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정상적으로 축복받는 임신과 출산을 하더라도 매우 복합적인 것이 임신한 여성의 심리이다. 이런 경우는 더 복잡할 것이다. 정리하기 매우 복잡한 문제라 생각한다.
▶ 네델란드 사람으로서 일본군 성노예가 되었던 경험을 수기로 쓴 사람의 경우 21살의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기록이 남을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여자들의 경우는 가난하고 어리고 못배웠기에 기록을 거의 남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유럽인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힌 오헤른의 수기(手記)다. 50년간 침묵했던 그녀는 1992년 초 TV에서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폭로를 보고 용기 내어 동참한다. 그녀는 외친다. "우리는 '위안부'였던 적이 없다. '위안'이란 편안하고 다정하고 친근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아니다! 우리는 '전쟁 강간 피해자'들이다."(236쪽)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 - 얀 루프-오헤른 지음, 최재인 옮김/삼천리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가 직접 쓴 최초의 단행본이다. 그동안 당사자의 증언을 담은 자료집들도 출간되었고, 전태일문학상 작품집에 묶인 김윤심의 <부끄러운 건 우리가 아니고 너희다>(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1998),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수기집 <훼손된 꽃>(Geknakte bloem, Nederlandstalig, 2013) 정도가 직접 쓴 글이다.
지은이 얀 루프-오헤른은 성노예로 끌려갈 당시 사범대학에 다니던 스물한 살 대학생이었다. 대개 15~20세의 어린 소녀들이 성노예 피해자의 대부분인 걸 감안하면 꽤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위안소'의 구체적인 운영 상황까지 다 파악하고 기억해낸 듯하다. 또 당시에 연필로 동료들의 얼굴이나 '위안소' 풍경까지 그린 스케치북과 손수건, 부채 등에 동료들이 이름을 직접 적은 증거를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는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된 '50년 동안의 침묵'(FIFTY YEARS OF SILIENCE)이 원제이다. 50년 동안 가슴 속에만 담아둔 고통스러운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적어 나간 용기는 미래를 살아갈 손주들에게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에서 나왔다.
전쟁이 끝나가고 '위안소'가 폐쇄될 무렵 일본군은 협박하며 침묵을 강요했고, 포로수용소로 돌아왔을 때는 다른 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가톨릭 신자로서 수녀를 찾아가 상담을 했지만, 수녀는 지은이에게 종교인이 되지 말 것을 권고했을 정도로 세상의 시선을 싸늘했다.
▶ 또한 "모성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고 한다. 분만과 분만 후에 분비되는 드로핀과 옥시토신 등 호르몬이 모성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타고난 생리학적 능력을 믿고 출산에서의 의료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부와 산과의사 -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녹색평론사 |
책은 기술적, 산업적 출산이 낳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생태적으로 건강한 문명의 회복으로서의 출산 문화를 세우자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 군인도 인간적으로 봤을 때는 피해자였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살아돌아오라고 빌어준 것은 감정이입 이라기보다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마주 대하는 한 인간의 생존에 대한 제스츄어라고 본다. 군인들도 나름의 전쟁을 겪으며 고통으로 절규하고 있는 존재들이기에.
▶ 김 숨작가가 이 책에 이어 두권의 증언집을 냈다고 하는데 나는 진짜로 할머니들이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작가의 이야기인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지....
(작가가 철저히 고증하는 사람이다. 할머니들의 직접적인 서술일 것이다.)
1인칭 소설로 화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 작가의 의도는, 이 생에서 그 어느 것도 누리지 못한 채, 고통의 세월에서 상흔의 부적만 겨우 간직하고 살아남은 자 ―이미 늙고 병든 이―의 증언의 형식보다 더 강력한 리얼리티로 생생한 현장성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껏 선명하게 기억하는 허약했던 나라의 역사, 그 치부를 말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나라를 위해 그들이 치룬 무차별적인 희생에 대한 무관심과 냉혹한 시선을 사실감 있게 전달한다. 나아가 삶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연민이 없는 사회의 굴곡진 현 사회의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
김숨 지음/현대문학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할머니.
‘나를 사랑해야 너를 사랑할 수 있다’는 할머니.
형언 불가능한 고통스러운 생을 살고도, 인간 안에 선함이 있다는 것을 믿고,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저를 소설가가 아닌 선생님으로 알고 계십니다. 문득 찾아와 쓸데없는 걸 묻고 또 물으며 당신을 못살게 구는 선생님. 가지 말라던, 그냥 당신 등에 붙어서 자라던 할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도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김숨 지음/현대문학
결국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예순두 살에 ‘위안부’로서의 삶을 고백했으나 이후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가족들의 외면이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침묵한 탓이었다. 개인의 소중한 삶이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리도록 방기한 결과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니 가족마저 외면했던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박제가 된 역사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혼자 묻고 혼자 답해온 것을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함께 묻고 답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한 존재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내야 한다.
“다들 모른다고 말해도 나는 알아. 내가 겪은 일을 나는 알아. 잊은 적 없어.”
4. 가해자인 군인들에게 살아 돌아오라고 빌어주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보셨는지
▶ 소설이니까 이런장면을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중 어떤 사람, 어떤 한명은 이런생각을 했을 수 있겠다. 우리는 개인이 전체를 대변하기를 바라는 생각이 있고 모두에게 다 똑같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각자 다르게 반응한다.
일본장교의 편지를 이용한 이유는 입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 여러군인중에 상대적으로 잘해주는, 아프면 사정을 봐주는 군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 고증에 충실한 작가이니 맞을 것 같다.
▶ 몸이 아닌 영혼까지 빌어달라고 해서 빌어줬다.는 말이 있다.
영혼을 원하지만 영혼은 비누칠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영혼값은 치르지 않는다 라는 대목이 있다.
몸을 원하는 것을 넘어 영혼을 뒤흔드는 삶에 분노한다.
▶ 소녀들은 사물이 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몸과 영혼을 분리하면서 견디어 가던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는 증거일 것.
▶ 212 -214 말을 하면서 캬라멜 한통을 놔 둔 군인이 나온다.
▶사람이기 때문에 잠깐씩 타고난 본능과 천성때문에 친절을 베푸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때문에 사는 것이 인간 아닌가 한다. 계속은 아니지만 나에게 마음으로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5. 고통의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일인칭 고백체”(p.295)를 이용한 저자의 집필 전략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 작가는 이것이 어떤 사건이 아니고, 살아 숨쉬는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인칭이 필요했을 듯하다. 성공했다고 보는데 일인칭의 경우 거의 다 끝나갈 때쯤에는 이게 정말 사실인가? 하고 의구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 일인칭 고백체는 절실한 느낌을 주며 고통과 감정을 강력하게 스며들게 한다.
▶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2인칭이다. 광주항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으니 거리를 두는 것이다.
▶ 그들의 고통을 사회적인 고통으로 전달하고 싶은 의도에 맞는 서술방식이다.
▶ 일인칭이고 같은 여자로서 우리나라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주인공 금자의 심정이 이입이 잘 되었다. 일인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문학적인 표현에 의구심이 들었으나 증언집과는 전달해 주는 힘이 달랐다.
▶ 이야기 내용상 2016에 출간된 <한 명> 보다 선행했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의 삶속으로 체화되는 기간이 필요했다고 본다. 지난 2년간 자신의 일기장에 시처럼 써내려갔다고 한다.
■ 선택/찬반 논제
1.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국내 생존자는 27명이다.
우리가 위안부들의 삶에 대해서 잊지 않으며 기억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기억하고 있다 2명 , 기억하고 있지 않다. 9명
▶ 이 작품을 쓴 작가가 동인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친일상
김동인의 친일행적을 안다면 문학계의 청년들이 항변하고 저항할 수 있는 상황인데 등단이라는 목적때문에 그렇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김동인의 친일 행적
-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형상화하는 장편소설 "백마강", "성암의 길"을 집필
신문에 산문을 발표하여 일제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길 강조함.
- "대동아전쟁이야말로 인류 역사 재전의 성전인 동시에 나의 심경을 가장 엄숙하게 긴장되게 하였다."고 표현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이 한 민족"임을 강조( 1942년 1월 23일 매일신보)
- "지원병에서 징병으로 또는 특별지원병이 되는 것은 진정한 황민화의 산물(1944년 1월 1일)
-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를 방문해 황군을 위문할 사절단 제안한다. 1939년 4월 15일부터 5월 13일까지 김동인과 박영희, 임학수는 황군위문사절단으로 파견된다.
- 1941년 12월에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시국에 적극 협력할 것을 강조
- 1945년 8월 15일 오전에는 조선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베 다쓰이치를 찾아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아베는 정오에 일본이 항복선언을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위안부 문제 다룬 김숨 소설가와 친일파 문인 기리는 동인문학상 후보 선정의 아이러니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55
▶ 동인문학상과 관련하여 평론가 고 김윤식씨는 생전인터뷰에서 작가의 삶을 가지고 문학작품의 작품성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한바 있다. 예를 들면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학적 업적은 별개라는 것.
▶ 그렇지 않은 편이다로 생각했는데 왜냐면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단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아련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군표를 모으고 하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어찌보면 사람사는 것이 사는 정도로 그려져 있다.
▶ 왜 여태껏 이 문제에 대해 국가적인 대책을 해야 한다는 공감이 없었는지가 의문이다.
▶ 전체 사회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만을 본다면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요집회에 참여하고 홍보한다.
▶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지난 정부에서의 입장과 지금 정부의 입장이 달라졌다.
의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표명한 일관되지 못했다고 느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의견의 합의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
▶ 우리 정부가 수립된 것이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인 시간관념에서 보면 100년은 짧은 시간이다. 정부수립 100년이 채 안 된다.. 큰 맥락에서 보면 그런 혼란은 당연한 일로서 과정에서 일어는 일일 것이다.
▶ 이정렬 전 판사에 따르면 친일파가 안뽑히는 이유는 해방되고 사법체계를 다시 세울 때 일제 때 판사였던 사람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등 사법체계의 근간 자체가 친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해결하기에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친일파의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다.
▶ 그들이 역사에 대해 부채감을 느껴야 하며 말로 표현하고,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본다.
▶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사람들은 자기 아이에게 특혜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한국에서 쫒아내겠다"고 하는 말을해서 매우 놀랐었다.
■ 토론소감
▶ 책은 한없이 가라 앉는 느낌이었으나 토론은 유쾌했다. 감정을 공감하고 나눌 수있는 시간이었다.
▶ 개인적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책이었다. 토론에서 의외의 의견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 가슴이 아프고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역사적 사실에 공감하되 이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현재, 미래를 지향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악몽- 아이한테 총을 주고 같이 탈출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사람,
이를 경험한 사람에 비교할 바는 아니며 내가 평가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토론은 재밌었다.
▶ 인터넷서점을 검색해보니 위안부에 대해서 나온 첫 책이 1993 년이고 소강기가 있다가
2000년대 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와 같이 기억이 환기되지 않고 있다. 다양한 학술적인 내용 기록들이 더 나와야 한다.
▶ 아우슈비츠의 한 팻말에 쓰인 조지 산타야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써 있고
- 홀로코스트 기념관 초입에는 다음과 같은 프리모 레비의 말이 있다고 한다.
"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 this is core of what we have to say." (이건 일어났던 일이고,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 이것이 우리가 말해야 할 핵심이다)
“유대인의 참상은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있는데 우리는 기록조차 되지 않은 참상이 무수히 많다. (…) (참상들이) 역사로 남으려면 기록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구체적인 고통 속에 있는 피해자들의 서사는 알려지지 않으면 계속 반복된”다.
▶ 이 작품을 어제 온라인으로 토론했었는데 결이 다른 토론이었다.
증언문학이 성립한다는 것을 새로이 느낐다. 이런 작품을 남자들과 같이 토론하면 좋겠다.
▶ 독서토론이 처음이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나 사실 하고 싶은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언제 얘기를 꺼내야 할지 잘 치고 들어가지 못했다.
- 만나야 할 인연은 만나야 하듯이 이 책 역시 만나야 할 책이었다.
읽느라 힘들지만 만나서 감사하다.
- 사실 나는 젊어서부터 관심이 많아서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데 집중하느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이런 데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작가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신해서 말을 해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큰 무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오늘 토론에서 가장 인상깊다.
▶ 할머니들이 수요집회를 하는 건물 뒤에서 5년간 일했지만 무감각했었다.
아마도 그때의 나를 만나셨더라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송구하다.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상처가 치유되셨으면 한다.
▶ <흐르는 편지>이 작품은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매스컴을 통과해 전달되는 역사에는 매스컴의 편견이 들어가 있다.
또한 이는 여성에게 일어난 문제로서 아우슈비츠를 보는 관점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
▶ 하소연하고 싶었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수 있는 것 아니겠나.
▶ 이들의 아픔이 공동체의 집단적 고통이 되어야 한다.
고통은 나눌 수록 반감된다는 말이 있다. 토론 역시 고통을 반감시키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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