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唯識 (3) -기복 불교의 양면성과 말나식 평소에 나는 기복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 오곡도 수련원은 간화선 수행처로서 기복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기복 불교를 무시하거나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독초로 알려진 풀이 약초로도 쓰이고, 약초로 알려진 풀도 독초가 될 수도 있다. 조건에 따라 독초 또는 약초가 될 뿐, 고정된 독초 또는 약초는 없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인 연기요, 공이다. 기능 기복 불교의 기도는 유루선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야금 소리가 잘 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줄을 너무 세게 죄거나 너무 느슨하게 죄면 안 된다. 가야금마다 알맞은 줄의 세기는 각각 다르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반야바라밀다에 매진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도 다 다르다. 기복 불교를 부정할 수 없는 .. 2020. 8. 24. 유식唯識 (2)- 개개인의 세계가 형성되는 구조 번뇌 장치들을 만들어 내고 견고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번뇌의 불꽃을 보는 순간, 불나비처럼 주체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해 그 불 속으로 질주하여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치닫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시시각각으로 내가 행하고 있는 몸짓 하나, 말 한마디, 생각 한 자락과 그것들이 남기는 종자들이다. 순간순간의 행위와 그 종자들을 일종의 에너지로 보면 이해는 쉬워진다. 일상생활 순간순간 우리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온갖 종류의 에너지를 쌓고 있다. 본인이 하루 종일 쌓고 있는 에너지가 어떤 성질의 것인지 살펴본 적이 있는가. 선하고 맑은 에너지인가? 아니면 분노와 증오, 짜증과 탐욕 등의 탁한 에너지인가? 번뇌의 에너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번뇌 장치들은 견고해지고 급기야 주체할 수 없는.. 2020. 8. 24. 유식唯識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행위가 남기는 영향력을 막을 수 없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셋으로 나눈다. 첫 번째가 신체적 행위로 이것을 신업身業이라고 부른다. 업(業, karman)은 행위를 뜻하는 불교 용어인데, 행위의 결과로 남게 되는 영향력도 그 의미 속에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는 말(언어)이다. 이것을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세 번째가 생각(정신 작용)으로 의업意業이라고 한다. 이 셋을 모두 합쳐 3업三業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3업 가운데 어느 하나이다. 그렇다면 행위의 영향력은 어디에 보존되어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새로운 행위나 과보를 초래할까? 유식은 이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고 세밀하게 밝히고 있다. 그 영향력이 남아서 보존되는 곳은 바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불리는 마음이다. 아.. 2020. 8. 24.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불교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갈애渴愛와 무명無明에 있다고 본다. 갈애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말하고, 무명은 진리에 대한 어리석음을 뜻한다. 갈애와 무명을 달리 표현한 것이 탐(貪 탐욕)ㆍ진(瞋 화)ㆍ치(癡 어리석음) 3독이다. 탐과 진은 갈애의 다른 표현이고, 치는 무명의 다른 표현이다. 탐이 갈애에 속하고 치가 곧 무명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진인데, 화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난다. 화는 이와 같이 욕망 때문에 일어나므로 갈애에 속하게 된다. 인도 민화 속의 부자의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다. 채워지는 족족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이것을 갈애라고 한다. 경전에서는 “설산 전체를 황금으로 바꾸고 또 그것을 두 배로 늘인다고 해도 한 사람의 갈애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2020. 8. 24. 공空(10) | 화두를 든다는 것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1813-1855)는 이런 실제 사례를 말한 적이 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훌륭한 책을 낸 사람이 있었다. 그의 명성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는 매우 힘든 시련을 겪게 되었으며 깊은 의혹 속을 헤맨 끝에 목사 한 분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목사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의 하소연을 다 듣고 목사는 책 한 권을 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 책을 읽고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은 구원될 길이 없는가 봅니다.” 목사가 권한 책은 목사에게 가르침을 청한 바로 그 사람이 저술한 책이었다. ... 구원에 관한 저명한 책을 쓸 정도로 구원에 해박한 사람도 결국 구원을 얻을 수 없었다. 우리가 대학 강단을 떠나 오곡도로 들어온 이유도 .. 2020. 8. 24. 공空 (7) 시방삼세 제망찰해, ‘나’ 아닌 것 없다 이상은 ‘나는 공하다 = 나에게는 나라는 자성이 없다 = 나는 나가 아니다 = 나는 임시로 붙여진 이름에 불과하다’라는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 본 것이다.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해 왔던 것은 허구일 뿐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오고 간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없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자가 없다면 옴도 감도 당연히 없다. 그래서 『중론』 첫머리 귀경게에서는 ‘불래불거不來不去’, 즉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철수든 영희든 불변의 독립된 개체가 있어야 오고 감이 있다. 그런 독립 개체가 없으니 오고 감도 없다. ‘오고 간다’의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핏줄과 신경사슬로 한 몸이 된 시방삼세 제망찰해, 즉 온 우주가 연주하는 교향곡일 뿐이다. .. 2020. 8. 24. 공空(5) . 반야바라밀다는 오히려 모든 결론에서 자유롭게 되었을 때 순간순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통찰력이다. 과거에 내린 결론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걸리지 않고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이다. 진정한 자비와 사랑도 이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의발을 찾으러 쫓아온 당신. 선악도 생각하지 말고, 고귀함과 추함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규정과 결론에서 자유롭게 되어라. 이때 당신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알았거든 지금 당장 보여 봐라. 과거의 결론에 붙들리지 말고 진실만을 보라. 지금 본 진실을 결론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다음의 진실을 보라. 결론의 끈에 발이 묶인 초라한 새가 되지 말라.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184.. 2020. 8. 24. | 번뇌는 실제로는 없는 헛것이다 숏다리가 그대를 절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저 사람이, 당신의 과거나 집안환경이 그대를 절망시키는 것도 아니다. “누가 그대를 절망케 하는가?” 우선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확신에 찬 답변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거나 타인에게 물어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이것저것이 필요하다고 앉아서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만 할 뿐,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왔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저 정도까지 노력하는데 누가 저런 결과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결과는 .. 2020. 8. 24. 공空(2) 홍길동이 태어났을까, 태어났으니 홍길동일까? 미운 놈을 피해야 할까, 피해야 할 미운 놈은 없는 것일까? ‘홍길동이 태어났다’는 말은 태어나기 전부터 홍길동이 있었다는 뜻이고, ‘태어났으니 홍길동이다’는 태어남을 통해 비로소 홍길동이 된다는 뜻이다. ‘미운 놈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하게 고정된 미운 놈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반면, ‘피해야 할 미운 놈은 없다’는 그런 고정된 미운 놈은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 가운데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진다. 전자는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사고방식이고, 후자는 대승불교의 사고방식이다. 두 사고방식 모두 ‘연기’라는 동일한 이름의 교리 아래에서 전개된 결과물이다. 왜 이처럼 차이가 나타나며,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htt.. 2020. 8. 24. 공空(1) | 공空은 연기緣起의 동의어 - 그 배경으로서 인도불교의 역사 | 꽃이 문제인가, 꽃에 대한 분별이 문제인가? 대승불교는 ‘공’이라는 이름으로 석가모니가 보여 주신 연기의 참뜻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렇다면 공으로 조망했을 때 꽃과 초상집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정성을 다해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린 꽃 한 송이는 빛나는 보석이지만, 공연장 여기저기에 버려두고 간 꽃은 쓰레기이다. 초상집에 가면 액운이 붙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불안을 초래하지만, 초상집 조문을 통해 삶이 짧다는 것을 깨달아 참답게 사는 계기가 되었다면 초상집은 훌륭한 스승이다.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 무엇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정해진 그 자체가 없이 단지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소멸할 뿐이라는 것이 ‘공’이다. h.. 2020. 8. 24. 연기緣起(4)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40 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 불광미디어 먼저 『유마경』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갠지즈강의 지류인 간닥(Gandak)강 하류에 위치한 바이샬리(Vaiśālī, 毘舍離). 이곳은 석가모니 당시 교통의 요충지로 자유로운 기운이 넘치는 부�� www.bulkwang.co.kr 2020. 8. 24. 연기緣起(3) 대주 선사는 밥 먹을 때 잡념 없이 100퍼센트 밥만 먹는다. 잠을 잘 때는 천하를 잊고 100퍼센트 잠만 잔다. 대주 선사의 경지라면 연구할 때는 100퍼센트 연구에만 몰두하고, 운동할 때는 100퍼센트 운동에만 몰입한다. 물이 컵에 들어가면 100퍼센트 컵 모양을 하듯이, 이 순간은 이 순간대로 100퍼센트 살고 다음 순간은 다음 순간대로 100퍼센트 산다. 그는 과거에 매달리지도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리대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12 나는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 - 불광미디어 장휘옥과 김사업은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외딴.. 2020. 8. 24.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121 다음